대게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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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대게 유래

천년의 역사 영덕대게

  • 권근(고려말 학자이자 정치가)의 『양촌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서기 930년 태조 왕건이 안동 하회마을 부근 병산 서원에서 견훤 군사를 크게 무찔렀으며, 이때 안동의 지방 유지들 외에도 당시 영해부를 관리하던 영해 박씨들이 토호세력으로서 전투를 도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왕건이 영해와 영덕을 들러서 경주로 갔으며, 이러한 사실은 지금의 영해 지역인 예주 연역에 잘 나타나 있다.
    이때 왕건은 지금의 축산면 경정리 차유마을에서 영덕대게를 처음 먹어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뛰어난 맛을 인정받은 영덕대게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임금님의 수라상에 진상되는 진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대조원조마을 차유마을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경정2리 차유(車踰)마을은 “영덕대게 원조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차유리가 영덕대게의 원조마을이 된 유래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고려 29대 충목왕 2년(1345)에 초대 정방필(鄭邦弼) 영해부사가 부임하여 관할지역인 지금의 축산면 경정리의 자연부락이며, 대게의 산지(産地)인 이곳 마을을 순시하였다.
    그후부터 마을 이름을 영해부사 일행이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어 왔다고 하여 차유(수레車, 넘을踰)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관할지역을 순찰하던 영해부사가 이 마을에서 진상한 대게의 특별한 맛에 반하여 하루를 더 머물렀다 갔다고 하여, 차유(수레車, 머무를留)마을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아담한 경정리 포구 언덕에는 1999년 4월에 세운 ‘대게원조마을’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임금님 수랏상의 대게

  • 조선조 초기에 지방특산품을 중앙에 조공할 때, 임금의 수랏상에 대게를 올려 맛보게 하였다. 그러나 당시 대게를 먹는 임금의 자태가 근엄하지 못하여 한동안 수랏상에 대게를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대게의 특별한 맛이 생각난 임금이 신하에게 다시 대게를 찾아오라고 명하였다. 임금의 명을 받은 신하가 게를 찾기 위해 궁궐 밖으로 나와 한참을 헤매던 끝에, 지금의 동해 영덕군 축산면 죽도(竹島)에서 한 어부가 잡은 게를 찾게 되었다.
    그때 어부에게 그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으나 어부가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크고 이상한 벌레라는 뜻으로 언기(彦基)라고 이름지었다. 그 신하가 대게를 들고 궁궐로 돌아와 학자들에게 물었을 때, 대나무와 같고 침이 있기에 죽침언기어(竹針彦基魚) 또는 대나무의 곧은 줄기와 같고 다리의 마디가 여섯 마디라는 뜻으로 죽육촌어(竹六寸魚)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은 죽해(竹蟹)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이처럼 대게라는 이름은 ‘게가 크다’는 뜻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 모양이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으며 길쭉하고 곧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오고 있다.